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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카트야야나 2025. 6. 30. 15:07

I. 서론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하나의 역설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공식 이념인 동시에, 그 의미와 정체성을 둘러싼 치열한 이념 투쟁의 장(場)이기도 하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는 한편, 바로 그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언어로서 끊임없이 호출되어 왔다. 이처럼 한국 자유주의가 지닌 '두 얼굴'은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 깊이 각인된 구조적 특징이며, 현대 한국의 정치적·헌법적 갈등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본 글의 핵심 논지는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가 국가에 의해 동원되고 때로는 왜곡된 '제도적 자유주의(Institutional Liberalism)'와, 이에 맞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해 온 '저항적 자유주의(Resistive Liberalism)' 사이의 지속적인 변증법적 투쟁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 투쟁은 1948년 제헌헌법의 제정에서부터 시작되어, 자유주의의 원형이 탄생했던 서구 근대 국가 형성기의 철학적 이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늘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조항을 둘러싼 이념 전쟁의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II. 한국 자유주의의 이중적 전개: 제도와 저항의 변증법

문지영 교수는 한국 자유주의가 단일한 경로가 아닌,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길을 따라 발전해왔다는 핵심적인 분석 틀을 제시한다. 하나는 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이식되고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변질된 '제도적 자유주의(IL)'이며, 다른 하나는 그에 맞서 아래로부터 분출한 '저항적 자유주의(RL)'이다. 이 두 흐름의 상호작용과 대립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 정치사상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제도적 자유주의(IL)의 도입과 변질

한국의 제도적 자유주의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복합적인 성격을 띠었다. 1948년 제헌헌법은 단순히 미국식 자유주의를 모방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북한 공산주의 정권과의 체제 경쟁이라는 첨예한 국내 정치적 맥락 속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결합'을 목표로 한 독특하고 진보적인 성격을 담지하고 있었다. 제헌헌법은 개인의 자유를 '공공복리'를 위해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사유재산권의 절대성이나 시장의 자율성보다 분배 정의와 국민의 복지를 강조하는 조항들을 포함했다. 예를 들어, 제18조 2항은 사기업 근로자의 이익 분배 균점권을 보장했으며, 경제 질서의 기본 원칙으로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각인의 경제상 자유"에 앞서 천명했다. 이는 자유주의가 국가 건설의 초기 단계부터 단순한 개인의 자유 보장을 넘어 사회경제적 정의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과제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외부적으로는 미국의 영향 아래, 내부적으로는 장기적인 내적 발전 과정 없이 '위로부터' 급작스럽게 제도화되었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제헌헌법이 담고 있던 진보적 잠재력은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체계적으로 해체되고 왜곡되었다. 이들 정권에게 자유주의는 내재적 가치를 실현해야 할 이념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반공 동맹의 일원으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외재적 가치'만을 지닌 도구에 불과했다. 그 결과, 수차례의 헌법 개정은 자유주의의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며, 제헌헌법의 핵심이었던 생존권적 기본권과 경제 민주주의 조항을 명목상의 규정으로 전락시키는 과정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도적 자유주의는 현실을 규율하고 비판하는 규범적 힘을 상실한 채, 오히려 왜곡된 현실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공식 이념은 국가가 주도하는 반공주의와 동일시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자유주의를 편협한 반공 이데올로기나 국가주의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저항적 자유주의(RL)의 부상과 그 사상적 특성

제도적 자유주의의 왜곡은 역설적으로 그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 이념의 등장을 촉발했다. 저항적 자유주의가 외부에서 수입된 이념이 아니라, 바로 그 제도적 자유주의의 모순으로부터 자생적으로 발현했다는 점이다. "일단 제도로서 주어지자, 제도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원리의 실현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를 야기"했다. 즉, 비록 명목상일지라도 헌법에 명시된 자유와 권리의 약속은 독재 정권의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규범적 긴장을 만들어냈고, 민주화 운동은 바로 이 헌법의 언어를 빌려 국가가 스스로 천명한 이념을 실현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저항적 자유주의는 국가가 배반한 헌법 정신을 복원하려는 투쟁이었던 셈이다.

 

저항적 자유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장준하, 함석헌, 김재준, 김성식, 이영희, 한완상 등 주요 비판적 지식인들의 사상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사상을 종합하면 저항적 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특징을 보인다.

  1. '민중'의 강조: 권리의 담지자이자 저항의 주체로서 고립된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유대를 지닌 '민중'을 강조한다.
  2. 경제 민주주의: 경쟁이나 사유재산의 절대성보다 협동, 분배 정의, 복지를 우선시하며,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의 결합을 추구한다.
  3. 열린 민족주의: 배타적인 반공주의가 아닌,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민족 정체성을 지향한다.
  4. 반공 자유주의 비판: 국가가 강제하는 왜곡된 반공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를 명시적으로 비판하고 거부한다.

결론적으로, 저항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결합'을 추구하는 '민중'의 해방 이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저항적 자유주의가 본질적으로 제헌헌법의 원래 정신을 계승하고 실현하려는 시도였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의 자유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제도적 자유주의와 민주화 이념으로서의 저항적 자유주의라는 두 개의 상반된 흐름 속에서 그 특유의 역사적 성격을 형성해왔다.

구분 제도적자유주의 저항적자유주의
핵심주체 국가, 추상적 개인 민중, 공동체
경제관 사유재산권과 시장 자율성 강조
(점차 정권에 봉사하는 형태로 왜곡)
분배 정의, 복지, 경제 민주주의 강조
민족주의관 국가 주도의 반공주의와 동일시 개방적, 포용적 민족주의 지향
주요기능 권위주의 권력 정당화, 대외적 정통성 확보 민주화 이념, 독재에 대한 저항
헌법적근거 헌법적 권리의 왜곡된 해석, 국가 권력 강조 제헌헌법의 본래 정신(정치적·경제적 권리) 원용 

표. 한국자유주의의 이중적특성(1948-1970년대)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자유주의의 빈곤'이라는 통념에 대한 근본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한국의 문제는 자유주의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헌법에 명시된 자유주의의 '약속'과 그것을 배반한 국가의 '현실' 사이의 극심한 괴리였다. 바로 이 괴리가 저항의 동력이 되었으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내적 추동력이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특히 '경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1948년 제헌헌법에서 출발하여 저항적 자유주의의 핵심 이념을 거쳐, 1987년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에까지 이어지는 '끊이지 않는 실'과 같다는 사실은, 시장근본주의적 시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협소하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비역사적인지를 명백히 증명한다. 그것은 한국 헌법의 고유하고 지속적인 전통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III. 자유주의의 원형 탐구: 근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이념

한국 자유주의의 왜곡된 현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가 본래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역사적·철학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명예혁명과 자유주의의 탄생: 반국가 이념이 아닌 국가 건설의 철학

자유주의는 흔히 국가를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권리와 시장의 자율성을 절대시하여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반(反)국가적, 반(反)공동체적 이념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그 탄생의 순간부터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그것은 국가를 파괴하기 위한 이념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주의적이고 자의적인 구체제를 변혁하여 '근대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핵심적인 철학이었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은 이러한 자유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당시 혁명의 핵심 쟁점은 추상적인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제임스 2세의 절대주의적 통치에 맞서 종교적 관용을 확보하고,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부터 인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며, 의회의 주권을 확립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국가 건설의 과제들이었다. 즉, 초기 자유주의는 국가에 대한 회의주의가 아니라, 어떤 국가가 정당하며 어떻게 국가를 재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답변이었다.  

 

 존 로크 사상으로 본 초기 자유주의의 핵심

이러한 국가 건설의 철학은 명예혁명의 사상적 기수였던 존 로크의 『통치론』에 집약되어 있다. 『통치론』은 혁명을 선동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쓰인 치열한 정치적 텍스트였다. 오늘날 시장근본주의자들이나 권위주의자들이 입맛에 맞게 재단하여 사용하는 로크의 사상은 본래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 법치 (Rule of Law): 로크에게 법치는 국가 권력을 제약하는 소극적 장치를 넘어, 자유를 실현하는 적극적인 조건이었다. 법의 지배는 군주의 '자의적 의지'로부터 인민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며, 국가를 정당하게 만드는 근본 원리였다. 당시 제임스 2세가 의회의 동의 없이 법률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행위에 맞서, 로크의 법치 사상은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헌정 질서의 확립을 요구하는 혁명적 이념이었다.  
  • 인민주권 (Popular Sovereignty): 로크는 정부를 인민이 자신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신탁(trust)'으로 규정했다.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민에게 있으며, 정부가 그 신탁을 위반했을 때 인민은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저항권'을 갖는다. 특히 "누가 판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인민이 재판관이다"라고 답함으로써, 로크는 인민을 단순히 잠재적 주권자가 아니라, 정부의 정당성을 상시적으로 심판하는 현재적 주권자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이는 왕권신수설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천명한 것이었다.  
  • 소유권 (Property Rights): 로크의 소유권 이론은 무제한적인 축적을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적 논리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첫째, 인간의 '노동'이 소유의 정당한 기원임을 밝혀 왕의 은총에 의해서만 재산이 보장된다는 봉건적 관념을 타파하고, 둘째, 군주의 자의적인 재산 침탈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일단 정치사회가 수립된 이후에는 개인의 소유권 역시 '공공선(public good)'의 증진을 위해 법률에 의해 규율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보았다. 이는 로크의 자유주의가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의 가치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이처럼 자유주의의 원형을 탐구하는 작업은 현대 한국의 이념 논쟁에 중요한 규범적 잣대를 제공한다. 국가 주도의 반공주의와 개발독재를 정당화했던 '제도적 자유주의'나, 시장의 논리를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은 자유주의의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인민주권과 경제 민주주의를 외쳤던 한국의 '저항적 자유주의'가 역설적으로 로크적 자유주의의 원형,자의적 권력에 저항하고 공공선을 추구하며 민주적 국가를 건설하려는 그 본래의 정신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철학적 재평가는 저항적 자유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대적 왜곡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지적 무기를 제공한다.

IV. 현대 한국의 헌법 이념 논쟁

수십 년간 이어진 제도적 자유주의와 저항적 자유주의의 갈등은 오늘날 헌법의 핵심 조항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해석을 둘러싼 이념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역사적 기원과 정치적 오용

논쟁의 핵심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는 그 탄생부터 정치적 오용의 역사를 안고 있다. 이 표현이 헌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2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반(反)민주적이고 반(反)자유주의적이었던 유신헌법에서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거대한 명분을 내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총체적으로 억압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이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실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자유민주적인 독재 체제에 정당성의 외피를 씌우기 위한 수사적 장치로 동원되었다. 이 용어의 기원이 이처럼 권위주의 정권의 자기 정당화 논리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후 이 용어가 특정한 이념적 편향성을 띠게 되는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역사교과서 논쟁'으로 본 이념 대립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둘러싼 이념 투쟁이 사회 전면으로 부상한 계기는 2011년부터 본격화된 '역사교과서 논쟁'이었다. 정부가 역사 교과서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일괄 변경하려 시도하면서, 이 용어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거대한 대리전의 상징이 되었다.  

 
  • 뉴라이트의 정의: 이 논쟁을 주도한 뉴라이트 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매우 협소하고 특정한 이념적 패키지로 정의했다. 그들이 내세운 '자유민주주의'는 ① 강력한 반공주의와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 ② '작은 정부'와 규제 철폐를 지향하는 시장근본주의, ③ 친(親)기업·친(親)재벌적 성장제일주의의 결합체였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제도적 자유주의'가 지녔던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논리에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를 접목한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 반대 진영의 논리와 한계: 이에 맞선 역사학계 등 반대 진영은 뉴라이트의 '자유민주주의'가 냉전적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특정 이념을 지칭하는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가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라는 포괄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반대 진영 역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뉴라이트의 협소한 정의에 내어준 채, 그 용어의 더 풍부하고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논쟁은 '자유민주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비생산적인 이분법에 갇히게 되었다.  

3. 헌법 정신과의 불일치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시장근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의 실질적인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헌법 전문은 물론 본문 곳곳에는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정의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제헌헌법의 '경제 민주주의' 정신과 저항적 자유주의의 이념을 계승한 것으로, 우리 헌법이 결코 '작은 정부'나 '규제 없는 시장'을 지향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시장근본주의와 동일시하는 해석은 헌법의 핵심 조항을 무시하는 자의적인 독해에 불과하다.

결국 현대 한국의 헌법 이념 논쟁은 과거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제도적 자유주의와 저항적 자유주의의 투쟁이 현대적으로 재현된 것이다. 뉴라이트의 이념은 반공주의와 개발주의를 계승한 제도적 자유주의의 현대판이며, 이에 대한 반대는 저항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헌법 내부에 존재하는 심각한 긴장을 드러낸다. 즉, 권위주의 시대에 삽입되어 정치적으로 오염된 '용어'('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화 투쟁의 성과로 쟁취된 진보적 '실질'('경제 민주화' 등)이 하나의 헌법 안에서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용어 논쟁을 넘어, 한국 헌법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핵심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V. 결론

본 글은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가 국가 권력에 의해 도구화된 '제도적 자유주의'와, 이에 맞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추구해 온 '저항적 자유주의'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투쟁의 과정이었음을 밝혔다. 이 투쟁은 1948년 제헌헌법의 진보적 정신과 그 배반에서 시작되어, 수십 년간의 민주화 운동을 거쳐, 오늘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용어의 해석을 둘러싼 이념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논문

문지영 『한국에서 자유주의』 서강대박사논문,  2002
문지영 『자유주의와 근대 민주주의 국가』 한국정치학회보45,  2011
문지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한국의 헌법 이념』 인간환경미래23,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