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부/논문공부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건축

카트야야나 2025. 6. 30. 09:56

I. 서론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보수주의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정치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항상 '위기'라는 수식어를 동반해왔다.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해 온 주류 세력이면서도, 정작 '무엇을 위한 보수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는 그 철학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온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는 종종 일관된 철학적 체계가 부재하며, 이로 인해 끊임없는 '정체성의 위기(crisis of identity)'를 겪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이념적 실패가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근대화 과정과 국가 형성의 역사적 궤적에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특징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 복잡한 역설을 해명하는 데 있어, 강정인 교수의 연구는 다층적이고 정교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그의 연구는 한국 보수주의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적인 이론적 기둥을 제시하며, 본 글은 이 세 기둥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할 것이다.

  1. 구조적 기원: 서구와 한국의 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와 충돌이 빚어낸 '비동시성의 동시성(simultaneity of the non-simultaneous)'이라는 개념은 한국 보수주의가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모순을 설명한다..  
  2. 정당성의 원천: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신성화된 민족주의(sanctification of nationalism)'는 다른 모든 이념을 압도하며 보수주의의 핵심적인 정당성 부여 기제로 작동했다.
  3. 이념적 원형: 근대 이전, 서구 문명에 대한 전면적 저항으로 나타난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은 비록 단절되었지만, 한국 보수주의의 반(反)개인주의적, 권위주의적 심성의 원형(archetype)을 제공했다. 

따라서 본 글은 강정인 교수의 분석을 종합하여, 한국 보수주의가 서구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독특한 이념적 형성물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한국 보수주의는 압축적이고 탈맥락적으로 수입된 근대 이데올로기들이 만들어낸 구조적 공백을 일관된 철학이 아닌, 신성화되고 국가중심적인 민족주의로 채워 넣은 산물이다. 나아가 이러한 구조는 지속적이진 않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친 전근대적, 반(反)개인주의적 세계관의 유산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그 결과 추상적 원칙의 보존이 아닌 국가기구 자체의 보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특유의 보수주의를 탄생시켰다.

 

II. 구조적 토대: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이중적 질서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그것이 탄생하고 성장한 구조적 조건을 해명하는 것이다. 강정인 교수는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사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개념을 차용하여, 한국과 같은 주변부 후발국이 겪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탁월하게 분석한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개념과 적용

유럽의 선발국에서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근대 정치사상은 수백 년에 걸쳐 순차적·계기적으로 출현했다. 자유주의가 기존의 절대군주제에 저항하며 등장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구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가 형성되었으며, 이후 산업화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주의가 대두했다. 이처럼 각 이념은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 대응하며 점진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주변성과 후발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 모든 서구의 이념들은 내재적 발전 계기를 생략당한 채, 거의 동시적·압축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인 '완제품(finished products)'의 형태로 수입되었다. 17-18세기의 과두제적 공화주의 이념이 아니라 보통선거권을 포괄하는 완성된 형태의 자유민주주의가, 그리고 초기 사회주의 사상이 아니라 러시아 혁명 이후 정식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곧바로 유입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현상은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사적 시간대(world-historical timezone)'의 보편적 압력과, 이를 온전히 수용하고 운용할 사회·문화적 기반이 미성숙했던 '한국사적 시간대(Korean-historical timezone)' 사이의 충돌과 불일치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강정인이 분석하는 한국적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핵심이다.

'이중적 정치질서의 중첩적 병존'

이러한 구조적 조건은 해방 이후 남한에 독특한 정치 질서를 낳았는데, 강정인교수는 이를 '권위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중적 정치질서의 중첩적 병존(overlapping coexistence of a dual political order)'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질서 속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은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의 공식 이념으로 채택하고 헌법에 명시해야만 했다. 이는 당시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부과한 규범적 압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전근대적 사회구조의 잔존이라는 현실 속에서 국가를 운영해야 했던 지배 엘리트들은 강력한 국가 권력을 통한 사회 통제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정치 질서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순적인 이중 구조를 갖게 되었다.

 

서구의 보수주의, 예를 들어 19세기 영국의 토리당이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정권은 민주주의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며 자신들의 비민주적 통치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위주의를 정당화해야 하는 근본적인 딜레마에 봉착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 보수주의를 서구의 그것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중적 질서의 결과

이러한 '이중적 질서'는 한국 보수주의의 성격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특징들을 낳았다.

내재적 이념적 모호성

한국 보수주의가 지키고자 했던 '현상(status quo)'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였는가, 아니면 현실에서 작동하던 권위주의 체제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보수주의의 태생적 모호성을 드러낸다. 보수주의의 핵심이 현실의 권위주의를 보존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코 권위주의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내세울 수 없었다. 대신, 권위주의적 통치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또는 '경제발전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기 위한' 잠정적이고 과도기적인 수단으로 포장되어야만 했다. 이로 인해 한국 보수주의는 반공, 국가안보, 경제성장과 같은 도구적 가치들을 민주주의와 연결시키는 담론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게 되었고, 이는 보수주의 자체의 철학적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고 항상 '내용적 공허함(content-less vacuity)'에 시달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진정성'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성숙한 철학이 아닌 이상화된 '수입 완제품'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의 정치 담론은 현실의 이념이 서구의 '정품' 모델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따지는 '진정성(authenticity) 논쟁'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공을 우선시하는 지배 이념은 반대파로부터 '사이비 자유주의(pseudo-liberalism)'라는 비판을 받았고, 보수 세력은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을 '위장 보수(disguised conservatives)'라고 공격했다. 이러한 논쟁은 이념의 본질적인 가치나 현실 적합성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정성'을 문제 삼아 도덕적 흠집을 내는 탈맥락적인 이데올로기 공방으로 흐르기 쉬웠다. 이는 이념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관념의 세계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교조적 격렬성'을 낳는 배경이 되었다

민주화 과정의 보수화

역설적으로, 이러한 이중적 질서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급진적인 혁명보다는 체제 내 개혁의 형태로 귀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민주화 운동의 구호가 종종 '호헌(護憲, protecting the constitution)'이나 '민주수호(民主守護, defending democracy)'와 같이, 권위주의 정권이 명목상으로나마 인정했던 규범적 질서를 회복하자는 보수적인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핵심 요구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에 집중되었던 것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을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적 틀 안에서 상상해왔음을 의미하며,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급격한 사회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개혁의 경로를 밟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론적으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낳은 '이중적 질서'는 한국 보수주의에 지워지지 않는 구조적 족쇄가 되었다. 그것은 보수주의로부터 일관된 철학적 내용을 앗아가는 대신,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를 오가는 이념적 유연성 혹은 모호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한국 보수주의가 왜 그토록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항상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열쇠다. 그것은 스스로의 철학적 기반 위에서가 아니라, 모순적인 현실을 관리하고 정당화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지극히 실용적이고 도구적인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III. 정당성의 동력: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중층결정적 힘

만약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모호성이라는 구조적 틀을 제공했다면, 그 공허한 틀을 채우고 강력한 정당성의 동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강정인교수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족주의가 단순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모든 이념의 정당성을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즉 '신성화된 민족주의(sanctification of nationalism)'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민족주의의 신성화'의 역사적 배경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세 차례에 걸친 민족적 위기와 좌절의 경험 때문이다. 첫째,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침탈에 맞선 국가 보존의 위기의식. 둘째,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과 그에 맞선 처절한 독립운동. 그리고 결정적으로 셋째, 해방의 기쁨이 온전한 민족국가 건설로 이어지지 못하고 강대국에 의해 민족이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겪게 된 충격과 상처가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과제가 되었고, 특히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다른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도덕적 정언명령이자 정치적 종교의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어떤 정치 세력이든, 어떤 이념이든 '민족'의 이름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으며, '반민족(anti-national)'이라는 낙인은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중층결정'의 개념: 민족주의에 의한 이념 지형의 재편

강정인교수는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개념을 원용하여, 신성화된 민족주의가 한국의 이념 지형에 미친 영향을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와 같은 여러 이념들이 각자의 논리를 가지고 경쟁했지만, 최종심급에서는 결국 민족주의에 의해 그 정당성이 규정되고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정치적 갈등의 본질이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라기보다는, '누가 진정한 민족주의자인가'를 둘러싼 '정통성' 투쟁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각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이념이야말로 민족의 독립, 통일, 발전에 가장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민족주의의 공통분모 위에서 격돌했다.

보수주의 담론의 '민족주의화'

이러한 '민족주의에 의한 중층결정'은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적인 정당화 전략으로 작동했다. 구조적으로 이념적 공허함을 안고 있던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핵심 통치 담론을 민족주의와 결합시킴으로써 강력한 설득력을 확보했다.

반공과 국가안보의 민족주의화

보수 정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던 반공주의는 단순히 이념 대결의 차원을 넘어 민족 정통성 수호의 문제로 포장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이야말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유일한 민족 정통의 국가이며, 북한은 "소련을 추종하는 괴뢰집단"이자 "남의 속국"이 된 반민족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박정희 정권 역시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주체성 없이 외세를 맹종하는 괴뢰"이자, "같은 민족인 남한의 동족을 학살하려" 하며, "우리의 민족사와 고유의 문화 전통을 부정"하는 '반민족' 집단이라고 낙인찍었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북한의 위협에 맞서 '반공'을 외치고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것은 남한 체제를 방어하는 것을 넘어, '민족의 생존과 자주', 그리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거룩한 민족주의적 과업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는 '반공의 민족주의화'라 할 수 있다.

근대화(경제발전)의 민족주의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 역시 강력한 민족주의적 서사로 채색되었다.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구호 아래 추진된 경제성장은 가난으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고 '자립경제'를 이룩하여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민족주의적 목표로 제시되었다.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나갈 길』에서 "빈곤으로부터 민족을 해방시켜 경제자립을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사적 과제"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담론은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을 민족 전체의 염원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승화시켰고, 국민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강력한 동원 기제로 작동했다. 나아가 이러한 경제적 자립 위에서만 진정한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또 다른 민족적 목표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통해, 경제발전은 중첩적으로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자유민주주의의 민족주의화

'이중적 질서' 속에서 명분으로만 존재했던 자유민주주의 역시 민족주의와 결합되었다. 보수 세력에게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로부터 '민족'의 자유와 개별 '민족 성원'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였기에 그 자체로 민족주의적 과제였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수입할 수 없다며, 한국의 특수한 현실과 전통에 맞게 변형시킨 '민족적 민주주의' 또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이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절차적 요소를 유보하거나 제한하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였다. 즉, 민주적 정당성의 결핍을 민족주의적 정당성으로 메우려는 이념적 장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 보수주의는 그 이념적 내용의 빈곤함을 '신성화된 민족주의'라는 강력한 외부 동력으로 보충했다. 반공, 국가안보, 경제성장, 심지어 민주주의까지 모든 것이 민족의 생존과 번영, 정통성 수호라는 이름 아래 재해석되고 정당화되었다. 이는 한국 보수주의가 서구처럼 내재적 원칙에 기반한 이념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모든 이념적 자원을 동원하는, 지극히 국가주의적이고 도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보수주의의 강력한 힘과 동시에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민족주의와의 결합은 보수주의에 강력한 동원력과 정당성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보수주의를 민족주의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자기 성찰과 이념적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했다.

IV. 역사적 DNA: 위정척사 사상의 반(反)자유주의적 원형

현대 한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계보를 추적할 때, 학계는 종종 19세기 말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그 연속성 부재를 이유로 논의에서 배제해왔다. 그러나 강정인 교수는 이러한 경향에 도전하며, 위정척사 사상이 비록 직접적인 조상은 아닐지라도,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한국 보수주의의 반감과 문제의식, 그리고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의 '원형(archetype)'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위정척사 사상을 단순히 전근대적 저항으로 치부하는 대신, 19세기 유럽의 복고적·권위적 보수주의와 비교함으로써 근대적 보수주의의 한 유형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위정척사 사상과 유럽 복고적 보수주의의 비교

강정인 교수는 구체제를 전복시킨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나 독일 낭만주의 보수주의자들의 사상과, 서세동점의 위기 속에서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자 했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학파의 위정척사 사상 사이에 놀라운 사상적 유사성이 존재함을 밝힌다. 양자는 서로 다른 문명적 기반(기독교와 유교) 위에서 출발했지만, 근대 서구 문명의 핵심인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 거의 동일한 구조의 비판을 제기했다.

계몽주의 비판: 불완전한 다수와 완전한 소수의 구별

근대 계몽주의의 핵심은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였다. 이성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사회 질서를 창조할 수 있으며, 무한히 진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유럽의 복고적 보수주의와 조선의 위정척사파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 유럽의 복고적 보수주의: 메스트르는 정치 헌법과 같은 사회 질서는 인간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신의 섭리와 역사 속에서 유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이성보다는 통제되지 않는 욕망과 권력욕에 의해 더 강력하게 지배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교황, 군주, 귀족과 같은 신의 뜻을 이해하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어리석은 다수 대중을 이끌고 사회 질서를 유지할 사명을 지닌다고 역설했다.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신적 질서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도전이며, 파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독일의 낭만주의자들 역시 평등을 '야만적 등화(等化)'라 비난하며, 봉건적 신분질서에 기반한 위계적 국가만이 진정한 자유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 화서학파의 위정척사: 화서학파는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을 통해 동일한 논리를 전개했다. 그들은 순선(純善)한 '이(理, Principle)'와 사사로운 욕망의 근원인 '기(氣, Material Force)'를 엄격히 구분했다. 다수의 평범한 인간(범인)은 '기'에 얽매여 인욕(人慾)을 따르기 쉽지만, 오직 성인(聖人)과 그 가르침을 체득한 소수의 현인(사대부)만이 천리(天理)를 파악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성인이 만든 예악(禮樂) 질서와 제도를 평범한 인간들이 멋대로 바꾸려는 개화(開化) 사상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악한(邪) 것이었다. 그들은 '이'와 '기'의 대립 구도를 중화(華)와 오랑캐(夷), 문명과 야만, 유교 문명과 서구 근대 문명의 위계적 대립으로 확장시켰다.

양자는 공통적으로 인간을 불완전하고 통제되어야 할 존재로 보았으며, 초월적 진리(신 또는 天理)를 체현한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지배하는 위계적 질서만이 안정과 도덕을 보장한다고 믿었다. 이는 이성과 평등에 기반한 근대적 인간관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였다.

자유주의 비판: 권위 안의 자유, 권위 밖의 방종

계몽주의의 정치적 표현인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양측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권위를 벗어난 '방종'으로서의 자유를 맹렬히 비판했다.

  • 유럽의 복고적 보수주의: 메스트르에게 진정한 자유는 신이 창조한 사회와 그 권위(법, 정부)라는 "유연한 사슬"에 묶여 있을 때만 가능했다. 이 권위를 벗어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악덕과 무지의 노예가 되는 길이었다. 보날드(Bonald)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은 가족, 교회, 공동체와 같은 중간 집단의 권위 아래에서만 번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가 유기체적 국가의 자유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무정부 상태를 낳는 체제였으며, 군주제만이 안정적인 통치 형태였다.  
  • 화서학파의 위정척사: 유인석은 서구의 "평등과 자유"를 "어지러운 싸움을 발생시키는 심각한 원인"이자 "만고천하에 가장 나쁜 말"이라고 극언했다. 그에게 자유주의적 개인은 오직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소인(小人)'에 불과했다. 진정한 자유는 예악(禮樂)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질서와 오륜(五倫)이라는 사회적 관계의 권위 안에서만 담보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공화정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며, 군주 1인에게 권위가 집중되어야만 사회가 안정된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들은 국내의 위계질서를 중화주의적 세계 질서(春秋大一統)와 연결시켜 정당화했다.

단절된 유산, 그러나 지속되는 심성

강정인 교수는 위정척사 사상이 조선 왕조의 멸망과 함께 정치 세력으로서는 급격히 소멸하여 이후의 보수주의와 직접적인 계보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주권을 상실하지 않은 채 전통 보수 세력이 근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명맥을 이었던 유럽이나 중국의 사례와는 다른, 한국사의 비극적 단절이다.  

 

그러나 위정척사파는 역설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들의 사상적 기반은 중화주의였지만, 최익현, 유인석 등 핵심 인물들이 항일 의병 투쟁의 지도자로 나서 목숨을 바침으로써, 그들의 저항은 '민족주의적 정통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유교적 가치(충효, 위계질서, 공동체주의)는 '민족의 고유한 전통'으로 포장되어 후대 보수 정권에 의해 선택적으로 소환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 윤리를 국민 교육의 근간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결론적으로, 위정척사 사상은 현대 한국 보수주의의 직접적 뿌리는 아니지만, 그 이념적 심층에 자리한 반(反)개인주의, 권위주의, 공동체주의적 심성의 역사적 원형을 제공했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보수주의가 서구의 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수용하면서도 왜 그토록 깊은 내면적 갈등과 반감을 드러냈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역사적 DNA라 할 수 있다.

V. 종합적 초상: 한국 보수주의의 규정적 특징들

지금까지 강정인 교수의 세 가지 핵심 분석 틀—구조적 기원으로서의 '비동시성의 동시성', 정당성의 동력으로서의 '민족주의의 신성화', 그리고 이념적 원형으로서의 '위정척사 사상'—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의 형성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이제 이 분석들을 종합하여, 서구 보수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한국 보수주의만의 독특한 초상을 그려볼 수 있다.

특징 1: 원칙이 아닌 국가를 위한 보수주의

서구, 특히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로 대표되는 영미 보수주의의 핵심은 국가의 급진적이고 추상적인 개입으로부터 사회의 유기적 전통과 제도를 보존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강정인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보수주의는 그 정반대의 성격을 띤다. '이중적 질서' 속에서 태어난 한국 보수주의가 보존하고자 했던 최우선 대상은 사회의 유기적 전통이 아니라 국가 기구 그 자체, 특히 권위주의적-발전주의적 국가였다.  

 

반공, 국가안보, 경제성장이라는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들은 모두 이 국가 기구를 강화하고 보존하기 위한 논리였다. 이 때문에 한국 보수주의는 역사적으로 영미 보수주의의 '작은 정부' 담론과는 정반대로, 강력한 국가 개입을 옹호하는 국가주의적(statist)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여왔다.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경제적 자유주의를 수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지만, 이는 '뉴라이트' 운동과 같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며, 그마저도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주의적 목표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보수주의의 근본적인 지향점이 추상적인 '자유'나 '전통'의 원칙이 아니라, '국가'라는 구체적 실체의 보존과 강화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징 2: 이념적 의존성과 도구주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인해 자체적인 철학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한국 보수주의는 그 정당성을 외부의 강력한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힘이 바로 '신성화된 민족주의'였다. 이러한 구조는 보수주의의 이념을 근본적으로 도구주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즉, 각각의 이념적 강령들은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채택되었다. 반공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반민족' 적을 설정함으로써 국민을 통합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경제발전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력을 과시하는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이러한 도구주의적 성격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정치적 반대 세력을 '친북좌파'나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색깔 논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정치적 논쟁을 이성적 토론이 아닌, 상대를 '민족의 적'으로 낙인찍어 배제하려는 시도로 변질시키며, 한국 정치의 극심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특징 3: 반(反)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적 충동

위정척사 사상의 단절된 유산에서 발견되는 반(反)개인주의적, 권위주의적 심성은 현대 한국 보수주의의 문화적·사회적 태도에 깊숙이 내재해 있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는 국가나 민족, 가족과 같은 공동체의 목표와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충동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전통적 가족 가치'를 강조하고 , 개인의 권리 신장보다는 '사회 안정'과 '국민 통합'을 우선시하는 정책적 선호로 나타난다. 최근 몇 년간 격화된 젠더 갈등에서 나타나는 일부 보수층의 강한 반(反)페미니즘 정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양성평등과 여성의 개인적 권리 주장을 기존의 가부장적 공동체 질서를 위협하는 이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또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보수 기독교계와 연계된 강력한 반대 역시,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사회의 전통적·도덕적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공동체주의적 충동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특징—국가주의, 도구주의, 공동체주의—의 결합은 한국 정치의 깊은 양극화 구조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보수주의가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 및 민족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고, 이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위로 규정하는 순간, 정치적 대립은 정책에 대한 합리적 이견을 넘어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실존적 투쟁으로 비화된다. 이는 타협과 협상이 불가능한 제로섬 게임을 만들어내며,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극심한 불신과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VI. 결론

민주화의 달성, 냉전의 종식, 그리고 경제적 성숙은 과거 한국 보수주의를 지탱해 온 세 개의 기둥—권위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을 동시에 뒤흔들었다. 이는 보수주의의 오랜 정체성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명확한 적과 '조국 근대화'라는 절박한 목표가 사라진 시대에, 보수주의는 과연 무엇을 보수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여러 흐름이 나타났다. 2000년대 등장한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색채를 벗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논리와 대한민국 건국사를 긍정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으로 보수주의를 재무장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낡은 보수를 대체할 새로운 보수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었으나,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의 통치 스타일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부활시켜, 국내의 정치적 반대파를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극단적인 양극화 정치로 귀결되었다. 이는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과거의 정당화 기제를 현재의 정치 투쟁을 위해 무리하게 동원하려는 시도이며, 보수주의의 이념적 고갈이 낳은 퇴행적 현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한국 보수주의가 나아갈 미래의 궤적은 몇 가지 중대한 과제와 맞물려 있다. 강정인 교수가 예측하듯이, 세계화와 다문화주의의 진전, 그리고 개인주의 가치의 확산은 과거와 같은 '민족주의의 신성화'가 더 이상 유효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민족주의라는 가장 강력한 정당성의 원천이 약화되는 상황은, 그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보수주의에게는 근본적인 위협이다.  

 

강정인 교수는 한국의 이념들이 더 이상 정적(政敵)을 공격하기 위한 '일회용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생산재(productive assets)'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보수주의에 있어 이는 공포(반공)나 과거의 영광(경제성장)에 기대는 대신, 그 자체의 논리와 비전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철학을 구축해야 함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한국 보수주의 앞에 놓인 과제는 북한이나 진보 진영에 대한 '반대'를 넘어, 스스로의 '긍정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공동체주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충동을 현대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요구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국가의 안정을 중시하는 가치를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성공적인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 보수주의는 최근의 정치적 혼란이 보여주듯 더욱 극단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심지어 반(反)민주적인 형태로 표류하며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합리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추구하는 '민주적 인내'의 습득이 절실하며, 이는 한국 보수주의가 스스로의 이념적 건축을 재검토하고 재건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참고논문

강정인, 『한국 보수의 비교사적 특징 : 서구와의 비교』 한반도선진화재단, 2008
강정인, 『한국 현대정치의 이념적 지형』한국과 국제정치 29, 2013
강정인, 『19세기 유럽의 보수주의와 조선 위정척사파의 근대 서구문명 비판』 한국정치학회보 제48집 제2호, 2014